리퍼블릭 코만도가 그립다.

<간지났던 하이바 보이들>

사실 3년 넘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것인데, 제가 이 블로그를 만든 원래 목적은 리퍼블릭 코만도 리뷰를 쓰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만들고나니 그놈의 귀차니즘이 엄습해왔고, 결국 미루고 미루다보니 리뷰는 이미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후였죠. 그렇다면 왜 게임이 나온지 4년이나 지나서 새삼스럽게 이 이야기를 꺼내느냐? 그건 요즘의 스타워즈의 양상을 보고 있자니 리퍼블릭 코만도가, 아니 그 게임이 가지고 있던 느낌이 너무나도 그리워졌기 때문입니다.

2005년 5월 1일 발매되었으니 대충 4년하고도 보름 됐군요. 시스의 복수가 개봉하기 바로 직전에 나온 게임이어서 그런지 리퍼블릭 코만도는 게임 그 자체에 포커스를 집중시키는 마케팅 (포스 언리쉬드으으으!!)을 하기에는 무리였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구공화국의 기사단이라던가 제다이 나이트, 배틀프론트, 엠파이어엣워 등 21세기의 대표적 스타워즈 게임들에 비해 저평가되는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하지만 리퍼블릭 코만도가 결코 낮게 평가될 수 없는 요소가 하나 있으니, 바로 게임 전체의 분위기입니다.

리퍼블릭 코만도는 어둡습니다. 정말 어둡습니다. 아마 스타워즈 전체 시리즈를 통틀어서도 이만큼 어두운 분위기를 가진 게임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리퍼블릭 코만도가 클론 전쟁이 가장 클론 전쟁 다웠던 시절에 나온 게임인 동시에, 그 클론 전쟁만이 가지고 있던 암울한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타 스타워즈 게임들이 대부분 제다이를 전투의 주역에 내세우는 반면 리퍼블릭 코만도는 오직 일개 병사가 주인공입니다. 제다이가 주인공일 때, 눈 앞에 있는 적은 둘 중 하나입니다. 다크 제다이 혹은 양민. 하지만 리퍼블릭 코만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공인 클론 코만도는 분명 클론 중에서는 강력한 축에 속하는 병과지만, 그것이 제다이와 클론 사이에 존재하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를 매꿔주진 않습니다. 분명 리퍼블릭 코만도에도 양민들이 적으로 등장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클론이 갑자기 높은 위치로 올라가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클론은 오직 클론일 뿐이고, 그가 싸우는 것은 그와 동등한 레벨의 적들인 것입니다. 이렇게 영화나 기타 컨텐츠에서 조명을 절대로 받지 못하던 음지의 존재들의 눈높이로 촛점을 옮기는 것은 클론의 좁다란 T-비져로 상징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본 전쟁기의 스타워즈 세계는 절대 밝음과는 거리가 먼 곳입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주던 것은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하는 훌륭한 연출에 있었습니다. 리퍼블릭 코만도를 한번이라도 해보신 분이라면 분명 잊지 못하실 겁니다. 검은 화면에 하늘색 텍스트만 떠오르던 인트로, 에피소드2에서 보여지던 수백만의 클론들 중 하나가 되어 인공적으로 양성되는 플레이어 자신, 첫 출격의 긴박함과 밖으로 보이는 긴박한 전투의 현장... 이렇게 사소한 디테일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쓴 전율적인 연출은 클론 전쟁이란 현장을 플레이어 스스로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최소한 연출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역대 스타워즈 게임 중 최고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런 리퍼블릭 코만도의 향취를 떠올리다보면 현재 애니메이션 클론전쟁 시리즈가 과연 이 전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나 의문이 들게 됩니다. 물론 수용자 층이 다르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클론전쟁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중학생용 이상은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에 반해 리퍼블릭 코만도는 -독일에서는 19세 판정을 받을 정도로- 잔인한 장면도 서슴지 않고 투입하여 보다 성숙한 수용자들을 노렸습니다. 어두운 작품이 어린이들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훌륭했던 과거의 것을 조금도 수용하지 않고, 마치 현재 그 견딜 수 없게 가벼운 분위기의 작품만이 진정 스타워즈인 것처럼 보여주는 것은 상업적 마인드가 너무 강하게 작용한 발상이라고 봅니다 (뭐 루카스가 언제 하루이틀 이랬습니까만...).

정말 통탄할만한 일은 이 리퍼블릭 코만도의 후속편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리퍼블릭 코만도는 훌륭했지만 결코 완벽한 게임은 아니었습니다. 타격감은 그야말로 최악이었고 (적이 총알을 맞고 있는지 안 맞고 있는지도 구분할 수 없..) 루카스아츠의 고질병인 짧은 플레이타임은 여기서도 그대로 이어졌죠 (그리고 포스 언리쉬드에서도 답습됐습니다 ㄳ). 하지만 게임의 기본 컨셉이 워낙에 괜찮았다보니 후속편이 나온다면 이러한 단점을 보안해 더욱 더 훌륭한 게임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루카스아츠는 리퍼블릭 코만도가 완성되자마자 팀을 해체했습니다.

개새!!!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혹자는 사장의 미움을 받았다고도 하고, 혹자는 차후 개발이 시작된 '차세대 스타워즈 게임' (옙. 포스 언리쉬드) 팀에 인력을 편입시키기 위해서였다고도 합니다. 어쨌든 루카스아츠 내 리퍼블릭 코만도 팀은 사라졌습니다. 게다가 게임 나오니 빌붙어서 돈 좀 벌어보자고 시작한 타이-인 소설 시리즈는 오히려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며 원작을 집어삼켜버렸고 현재는 아예 개인 동인지스러운 분위기가 되어버려서 마땅한 스토리도 없는 상태입니다. 지금은 루카스아츠가 게임 개발 자체를 포기함에 따라 후속작에 대한 희망은 물건너간 상태라고 밖에는 볼 수 없네요. 그저 리퍼블릭 코만도 이후 가장 분위기를 잘 살린 것(으로 기대되'었던') 배틀프론트3가 어여 제작사를 찾아 발매되길 기다릴 수 밖에요.

by Zannah | 2009/05/15 17:03 | 별들의 전쟁 | 트랙백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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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인비지블 at 2009/05/15 17:13
그리고 이 작품 후에 나온게 포스 언리쉬드입니다. ㄳㄳㄳ
떡밥은 존내 잘 모았는데 '역시' 요리는 볍신같았지요. 바야흐로 "내가 짜도 그거보단 스토리 잘 짜겠다."라는 수준의 작품이 말이죠.



ㅜㅜㅜㅜㅜㅜㅜ 리퍼블릭 코만도 후속작 내놔라 루카스. ;ㅅ;
Commented by Zannah at 2009/05/16 17:12
안습...ㅠㅠ 차라리 리퍼블릭 코만도처럼 담백하게 스토리 쫙 뺐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뭐 아예 없는 것보다는 역시 스토리가 있는 쪽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Commented by Allenait at 2009/05/15 18:20
...한숨만 나오는군요
Commented by Zannah at 2009/05/16 17:13
납득이 가지 않죠..
Commented by ejectionZERO at 2009/05/15 18:42
아 이거 진짜 분위기라던가 세세한 묘사같은게 걸작이었는데 말이지요. 새로운 시점에서의 스타워즈 세계를 보여주는 느낌이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엔딩도 마치 후속편이 있을 것처럼 해 놓고는... 그 후론 소식이 없지요. 예 예, 루카스아츠 이런 감사.(버럭버럭) 정말 후속작을 바라는 게임 중에 하나입니다.
Commented by Zannah at 2009/05/16 17:14
엔딩은 정말 이후에 뭔가 있을 것이라고 대놓고 말하는 것이었는데... 결과는 안습이었죠..ㅠㅠ 세브는 나중에 갤럭시에서 까메오 등장하는 걸로 끝나버리고.. 개인적으론 세브를 구하는 2편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감감 무소식..
Commented by 카바론 at 2009/05/15 21:20
<게다가 게임 나오니 빌붙어서 돈 좀 벌어보자고 시작한 타이-인 소설 시리즈는 오히려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며 원작을 집어삼켜버렸고 현재는 아예 개인 동인지스러운 분위기가 되어버려서 마땅한 스토리도 없는 상태입니다.>

이게 제가 EU 계열 싫어하는 이유임. (...)
까딱 이런 모양새로 잘못하면 고고씽이니.
Commented by Zannah at 2009/05/16 17:15
음? EU에서도 저렇게 되어버린 건 극소수인데 말입니다;;
Commented by 아크리트 at 2009/05/15 21:50
음음,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클론이 싸우는 것은 그와 동등한 레벨'에서 움찔했습니다. 칼빵 한방에 터져버린 드로이데카….

하아, 리퍼블릭 코만도 소설 나올땐 2를 엄청 기대했는데, 소설 꼴을 보니 절망만 생기고. 으앙.
Commented by Zannah at 2009/05/16 17:15
드로이데카는 안티아머나 터렛, 지뢰 등 항상 필요한 무기들이 갖춰진 상태에서 등장하지 무섭지 않지요. 가장 두려운 것은 역시 슈퍼배틀드로이드..
Commented by 울트라김군 at 2009/05/15 23:23
전투 전에 백팩을 당겨준다음 어깨를 툭 치면 뒤를 바라보며 ok사인을 보내는걸 봤을때 아 내가 대단한 게임을 구매했구나..싶은 생각이 들었었죠[...]
Commented by Zannah at 2009/05/16 17:20
정말 사소한 디테일에도 신경썼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죠. 그 외에도 찾아보면 꽤 많이 있답니다.
Commented by 마이니오 at 2009/05/16 00:23
이거 되게 제밋어햇는데..
정작 좋은건 다 부숴버리는 --
Commented by Zannah at 2009/05/16 17:21
그러게 말입니다.. 막상 포스 언리쉬드는 속편 예기가 나오고 있는데..ㅠㅠ
Commented by yodastreet at 2009/05/16 12:01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유령선 아클라마터에서 싸우던 부분이었죠. 소재야 식상하지만 그런 연출은 웬만한 공포게임에서도 보기 힘든데...
아, 또 처음 시작할 때 메뉴에서 만달로리안 노래가 나오는 거 보고 이거 제대론데? 했던 기억이 나네요
Commented by Zannah at 2009/05/16 17:24
고스트쉽 미션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포 분위기를 유지해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그 엄청난 드로이드의 홍수도 어떤 의미에서는 공포였지만요.
Commented by 포스 at 2009/05/16 12:46
솔직히 푸른 이쑤시게로 SBD를 때릴때는 좀 별로였지만 그래도
전 이게임에 대한 찬사로 OST파일만큼은 절대로 지우지 않고 있죠.
후속작 내놓으면 반드시 사갈테다ㅠㅠ
Commented by Zannah at 2009/05/16 17:27
헐 전 그 오히려 슈퍼배틀드로이드를 근접으로 잡을 때가 가장 재밌었는데 말입니다;;
Commented by Rtoto at 2009/05/20 02:28
굳이 말하자면 현행 클론워즈 체제가 보다 루카스의 생각에 부합하는 스타워즈가 아닐까 싶긴 한데... 그것과는 별개로,

리퍼블릭 코만도는 명작이었죠ㅠ_ㅠb
Commented by Zannah at 2009/05/21 20:16
루카스 취향에 맞는 쪽을 고르라면 역시 현재 클론전쟁 시리즈겠죠. 팬들 (이미 성인이 된)의 취향에는 좀 어긋나지만 말입니다.
Commented by 올드보이 at 2009/05/20 22:47
....그러나 루카스아츠는
리퍼블릭 코만도가 완성되자마자 팀을 해체했습니다.



개새!!!



ㅠㅠ

정말 최고의 게임이었죠.
최악의 타격감을 가진 주제에 이렇게 재밌을수있다니...

옛써 예써 하고 따라다니는 클론들에게 정이 담북들어 게임이 끝나고
빨강이가 죽었을때 정말 슬펐어요..


Commented by Zannah at 2009/05/21 20:17
저도 처음 연출 때문에 정신이 멍 해져서 게임에 완전히 몰입해버렸었죠.. 타격감이 물총이라는 건 두번째 플레이 때 겨우 깨달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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