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촬영을 금지한다길래 디카를 안 가져가서 사진이 없습니다. -_-)/
어제 ETP에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사실 이렇게 무사히 돌아온 것이 신기할 정도네요. 어제는 너무 일찍 가면 오래 기다리게 될 수도 있고, 애초에 앞에서 보고 싶으면 밤을 샜어야 했다는 것을 알았기에 살짝 늦게 갔습니다. 종합운동장을 지나는데 걸려있던 'ETP: 그냥 죽자'라는 현수막에서부터 이번 공연이 장난이 아닐 것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파크에서 예매할 때 현장수령을 신청했기에 매표소에서 엄청난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한산해서 놀랐습니다. 이름별로 굉장히 세분화 시켜놨기 때문에 대기시간 제로로 표를 수령할 수 있었습니다. 팔찌를 차고 공연이 열리고 있는 보조경기장으로 들어서자, 라인업의 1번 주자인 페이드가 벌써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자를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프라인 샵의 긴 줄에서 기다리며 페이드와 이어지는 껌엑스의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얼터너티브 그룹인 페이드는 보컬이 서양인이라서 처음에는 영미쪽 밴드인줄 알았는데 일본 밴드더군요. 격렬함 위에 서정적인 멜로디가 타고 흐르는 멋진 얼터너티브 밴드였습니다. 이어지는 껌엑스는 펑크락의 진정한 맛을 살린 밴드였습니다. 최근 펑크락의 정상에 있는 그린데이가 점점 대중적인 멜로디로 나가고 있는 데 반해 껌엑스는 펑크의 진정성을 살린, 달리게 만드는 밴드였습니다.
이 즈음에 친구와 합류해서 둘 다 별로 관심이 없었던 붐붐새틀라이트 시간에 밥을 먹기로 하고, 피아의 공연을 보러 앞쪽으로 이동하던 도중에 피아가 아닌 붐붐이 소개되길래 시간표가 바꼈나보다 하며 경기장 밖으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귀에 익숙한 노래가 나오면서 밴드가 스스로를 피아라고 소개했습니다. 그걸 듣자마자 저와 친구는 공연장을 가로질러 뛰어가며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미친듯이 피아의 공연을 감상하여 에너지를 소비하고는 식사를 하고 돌아와 붐붐의 마지막 곡을 감상했습니다. 이제 킨의 차례였습니다. 이미 빽빽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겨우 중앙 펜스 앞 5m 정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킨의 공연 당시는 2시 30분. 가장 더울 시간이었습니다. 어제 온도가 32도까지 올라갔다고 하더군요. 특히 저는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무더위를 느껴야 했습니다. 하지만 킨의 공연은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도 남을 정도로 감동적이었습니다. 특히 킨이라는 밴드가 제 음악 라이프에서 차지하고 있는 막대한 비중을 생각해보면... 정말 행복했죠. 제가 그토록 사랑하는 밴드의 맴버들이 바로 눈 앞에 있으니까요. 정말 모든 노래를 다 따라 불렀습니다. 하나도 빠지지 않고 전부를요. 초창기보다 라이브에서의 가창력이 좋아진 톰 채플린은 무대를 방방 뛰어다니며 분위기를 고조시켰습니다. 하지만 고질적인 체력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는지 뒤로 갈 수록 목소리가 작아지더군요. 중간에 관객들을 보며 'You have incredible energy!!'라고 외친 게 기억납니다. 공연 후반부에는 "Thank you!"를 연발하며 "We promise it will not take long to us to come back!"이라고 하더군요. 팬들이 들을 수 있는 가장 기쁜 말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어진 마지막 곡은 Bedshaped. 바로 제가 처음으로 킨을 접하게 해주고, 그 뒤로 저를 바꿔버린 곡이었습니다. 눈물이 다 나오더군요.
킨의 공연이 끝나자 완전히 탈진 직전이었습니다. 바닥에 한동안 앉아 있었는데 일사병이 걸리겠더군요. 일어서서 얼음물을 마시고, 그늘에서 좀 쉬면서 맥주를 한 캔 비운 뒤에 림프 비즈킷의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어제 최고로 신나는 공연은 림프 비즈킷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헤드라이너 경쟁에서 나인인치네일즈(NIN)와 한판 싸웠던 뒤라, 이들은 마치 관객들을 탈진시켜 바로 다음에 이어질 NIN의 공연에서 뻗어있게 만드려는 듯 했습니다. 정말 그만큼 미친듯이 흔들어대고 뛰어다녀야 했던 공연이었습니다. 프레드 더스트의 무대매너는 그야말로 최고였습니다. 팬들 사이로 내려와 노래하고, 이후에는 아예 앞쪽의 관객들을 불러 무대 위에서 같이 놀게 만들더군요. 특히 광복절이라고 태극기를 준비해 걸어놓는 센스는 탁월했습니다. 미션임파서블의 주제곡인 Take a Look Around가 나오자 저는 이번 곡이 마지막이겠구나 싶어서 제 인생에서 가장 격렬했던 해드뱅잉을 해댔습니다. 중간에 프레드가 관객들에게 앉아서 좀 쉬자고 했었는데, 역시 우리나라 락 팬들의 센스는 여전하더군요. 갑자기 뒤에서부터 파도타기를 하더랍니다. 그리고 이어진 후렴부에서는 팡팡 뛰먼서 모든 에너지를 발산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 오산이었습니다. 바로 다음에 이어진 곡은 Faith였고, 이건 정말 마지막 남은 일말의 에너지마저 짜내게 만드는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림프 비즈킷이 끝나자 정말로 NIN의 공연은 못 볼 것 같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화장실에 가니 청소하고 계시던 아주머니가 땀에 젖은 모습을 보시고는 등목을 시켜주시더군요. 덕분에 화장실에서 등목을 하는 신기한 경험도 했습니다. NIN의 공연까지는 준비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종합운동장 한복판에 널부러져서 쉬었습니다.
NIN의 공연은 앉아서 볼 생각이었지만 결국에는 일어나 앞쪽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소음과 불협화음의 마술사답게 NIN은 90분 내내 정말로 공연장 전체를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갔습니다. 특히 트렌트 레즈너의 카리스마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포스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제가 NIN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많이 쓸 말은 없군요. 다만 이들은 정말 최고였고, 탈진 상태였던 저에게 신비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 계속 뛰고 흔들게 만들었다는 것만 말해두죠.
아아.. 저는 어째서 서태지의 공연을 가만히 서서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저는 이미 제가 서태지에 대한 애정을 잃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만한 착각이 또 있을까요? 서태지는 이전에 있었던 모든 쟁쟁한 그룹들의 공연을 잊게 만들 만큼의 파괴력이 있었습니다. 어처구니 없게도 그건 제가 서태지에게 가장 마지막으로 기대했던 것이었습니다. 서태지밴드는 모든 곡들, 신곡이든 서태지와아이들 시절의 곡들이든, 모든 곡들을 정말로 헤비한 사운드로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주최자의 특권이 현란한 무대효과와 수만 팬들의 단합력은 서태지가 특히나 뛰어난 밴드들이 참가한 이번 ETP의 헤드라이너로 손색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마지막 곡이었던 라이브와이어에서 저는 홍수처럼 몰려드는 해방감을 느끼며 셔츠를 벗어던졌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정말로 행복했습니다.
이번 ETP 표를 살 때 20만원이라는 가격에 조금 떨렸었지만 끝난 후 지금에는 50만원이라도 내고 봤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어제 한계를 넘은 체력을 소비한 나머지 현재 온몸에 정상인 부분이 없습니다만, 어제의 그 죽을 것 같이 행복한 추억은 남아있습니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이 제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하루였습니다.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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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제 파산이라능.
저같은 경우는 시립교향악단 공연전에 개똥을 밟았지만
실내에서 느끼는 웅장한 사운드에 압도되서 집에오는 동안 짜증 났던 기분은 싹 날아가 버린 경험을 했습니다.
... 물론 개똥냄새는 희미하게 남아있었지만 말이죠;;;
다만 저런 페스트에 가면 날아오는 페트병 맞는 정도는 감수해낼 수 있습니다.
NIN때는 슬램존에서 개슬램 ㅋ
결국 태지형님 공연 못보고 탈진해서 나왔습니다 풉;;
태지형님 투어 한 번 더 한다고 하니 거기나 가야겠네요 ㅋ